가을의시 모음
(가을음악듣기 ↓)
** 가을 -- 함민복 **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 가을 -- 김용택 **
산그늘 내린 메밀밭에 희고 서늘한 메밀꽃이라든가
그 윗밭에 키가 큰 수수 모가지라든가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깊은 산속 논두렁에 새하얀 억새꽃이라든가
논두렁에 앉아 담배를 태우며 노랗게 고개 숙인 벼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농부와 그이 논이라든가
우북하게 풀 우거진 길섶에 붉은 물붕숭아꽃 고마리꽃 그 꽃 속에
피어 있는 서늘한 구절초꽃 몇송이라든가
가방 메고 타박타박 혼자 걸어서 집에 가는 빈 들길의 아이라든가
아무런 할말이 생각나지 않는 높고 푸른 하늘 한쪽에 나타난 석양빛이라든가
하얗게 저녁 연기 따라 하늘로 사라지는
저물 대로 다 저문 길이라든가
한참을 숨가쁘게 지저귀다가 금세 그치는 한수형님네
집 뒤안 감나무가 있는 대밭에 참새들이라든가
마을 뒷산 저쪽 끄트머리쯤에 깨끗하게 벌초된
나는 이름도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들의 고요한 무덤들이라든가
다 헤아릴 수 없이 그리웁고
다 헤아릴 수 없이 정다운
우리나라의 가을입니다
** 초가을 1 -- 김용택 **
가을인갑다
외롭고, 그리고
마음이 산과 세상의 깊이에 가 닿길 바란다
바람이 지나는갑다
운동장가 포플러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가
어제와 다르다
우리들이 사는 동안
세월이 흘렀던 게지
삶이
초가을 풀잎처럼 투명해라
** 초가을 2 -- 김용택 **
산 아래
동네가 참 좋습니다
벼 익은 논에 해 지는 모습도 그렇고
강가에 풀색도 참 곱습니다
나는 지금 해가 지는 초가을
소슬바람 부는 산 아래 서 있답니다
산 아래에서 산 보며
두 손 편하게 내려놓으니
맘이 이리 소슬하네요
초가을에는 지는 햇살들이 발광하는 서쪽이
좋습니다
** 가을이 가는구나 -- 김용택 **
이렇게 가을이 가는구나
아름다운 시 한 편도
강가에 나가 기다릴 사랑도 없이
가랑잎에 가을빛같이
정말 가을이 가는구나
조금 더
가면
눈이 오리
먼 산에 기댄
그대 마음에
눈은 오리
산은
그려지리
** 가을의 기도 -- 김현승 **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가을날 -- R. M. 릴케 **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 후로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를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매일 것입니다
** 가을 사랑 -- 도종환 **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 가을 저녁 -- 도종환 **
기러기 두 마리 날아가는 하늘 아래
들국화는 서리서리 감고 안고 피었는데
사랑은 아직도 우리에게 아픔이구나
바람만 머리채에 붐비는 가을 저녁
** 가을 들녘 -- 용혜원 **
기차를 타고
지나는 들녘마다
황금색 물결을 자랑하고 있었다
열차의 창으로 내다보이는
낯익은 시선의 감나무에
익어 가는 감들이
"나 익었어요!" 하며
즐겁게 소리지르고 있었다
가을 들녘을 달려가며
풍요로움에 행복해졌다
** 가을을 파는 꽃집 -- 용혜원 **
꽃집에서
가을을 팔고 있습니다
가을 연인 같은 갈대와
마른 나뭇가지
그리고 가을 꽃들
가을이 다 모여 있습니다
하지만
가을 바람은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거리에서 가슴으로 느껴 보세요
사람들 속에서 불어 오니까요
어느 사이에
그대 가슴에도 불고 있지 않나요
가을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
가을과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은
가을을 파는 꽃집으로
다 찾아오세요
가을을 팝니다
원하는 만큼 팔고 있습니다
고독은 덤으로 드리겠습니다
** 가을 -- 정호승 **
돌아보지 마라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다
돌아보지 마라
지리산 능선들이 손수건을 꺼내 운다
인생의 거지들이 지리산에 기대앉아
잠시 가을이 되고 있을 뿐
돌아보지 마라
아직 지리산이 된 사람은 없다
** 가을꽃 -- 정호승
이제는 지는꽃이 아름답구나
언제나 너는 오지 않고 가고
눈물도 없는 강가에 서면
이제는 지는 꽃도 눈부시구나
진리에 굶주린 사내 하나
빈 소주병을 들고 서 있던 거리에도
종소리처럼 낙엽은 떨어지고
黃菊도 꽃을 떨고 뿌리를 내리나니
그동안 나를 이긴 것은 사랑이었다고
눈물이 아니라 사랑이었다고
물 깊은 밤 차가운 땅에서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꽃이여
** 가을 -- 안도현 **
사과가 익었다고
콕콕 쪼아대더니
부리 끝이 시다고
깍깍대는 때까치
** 가을 햇볕 -- 안도현 **
가을 햇볕 한마당 고추 말리는 마을 지나가면
가슴이 뛴다
아가야
저렇듯 맵게 살아야 한다
호호 눈물 빠지며 밥 비벼먹는
고추장도 되고
그럴 때 속을 달래는 찬물의 빛나는
사랑도 되고
** 가을의 소원 -- 안도현 **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 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 가을 엽서 -- 안도현 **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 가을 편지 -- 고은 **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 추풍(秋風)에 부치는 노래 -- 노천명 **
가을 바람이 우수수 불어 옵니다.
신이 몰아오는 비인 마차소리가 들립니다.
웬일입니까~
내 가슴이 써-늘하게 샅샅이 얼어듭니다.
[인생은 짧다]고 실없이 옮겨본 노릇이
오늘 아침 이 말은 내 가슴에다
화살처럼 와서 박혔습니다.
나는 아파서 몸을 추설 수가 없습니다.
황혼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섭니다.
하루하루가 금싸라기 같은 날들입니다.
어쩌면 청춘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었습니까.
연인들이여 인색할 필요가 없습니다.
적은 듯이 지나가버리는 생의 언덕에서
아름다운 꽃밭을 그대 만나거든
마음대로 앉아 노니다 가시오
남이야 뭐라든 상관할 것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 밤을 도와 하게 하시오
총기(聰氣)는 늘 지니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금싸라기 같은 날들이 하루하루 없어집니다.
이것을 잠가둘 상아궤짝도 아무것도
내가 알지 못합니다.
낙엽이 내 창을 두드립니다.
차시간을 놓친 손님모양 당황합니다.
어쩌자고 신은 오늘이사 내게
청춘을 이렇듯 찬란하게 펴 보이십니까
'★각종생활정보자료 > #연예&재미&시&기타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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